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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오천 원만 주면 키스해주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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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작성일24-06-28 14:42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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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소설 <오천 원만 주면 키스해주는 놈>의 주인공은 학교 옥상에서 단돈 5000원에 ‘키스장사’를 하는 남고생 은서현이다. 소설이 연재된 2006년 기준 최저시급은 3100원이었으니 은서현은 시급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에 자신의 키스를 판 것이다.
현재 물가를 적용하면 은서현의 키스 서비스 가격은 회당 1만5000원이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1만5000원만 주면 키스를 해주는 놈이 있는데 그 가격이 과연 적절한 것 같으냐고. 엄마는 나를 몇 차례나 무시하다가 겨우 대답을 해주었다. 그게 무슨 장사야. 시급은 왜 따지고 앉아 있어. 나는 똑같은 질문을 챗GPT에게도 해봤다. 챗GPT는 시원스럽게 답을 했다. ‘남자 고등학생이 회당 1만5000원에 키스를 판매하는 행위는 윤리적, 법적, 사회적, 정서적 측면에서 모두 부정적인 결과를 만듭니다.’
한때 나는 ‘청첩장만 주면 결혼식에 와주는 놈’이었다. 취직을 한 후 나는 ‘멀쩡한 나’를 만드는 데 온 정신을 몰두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출, 자퇴, 우울증이라는 과거의 경험과 지금의 나를 단절시키는 것이었는데 누군가의 예식에 참석하는 일은 그 문제를 아주 쉽게 해결해주었다. 옷장에서 가장 단정한 옷을 골라 입을 때, ‘슈퍼 그레이트 파라다이스 그랜드 갤럭시 홀’에 도착해 축의금이 담긴 봉투를 내밀 때, 두 사람의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환희의 박수를 보낼 때….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을 ‘잘 살고 있다’는 감각으로 치환한 뒤, 그 장면들에 나의 앞날을 포개며 내 우울한 과거를 잊고는 했다.
하지만 그 환상의 효력은 크지 않았다. 연차가 쌓일수록 업무는 가중되었지만 인력은 충원되지 않았다. 일을 관두면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나는 주말에도 쉴 수가 없었다. 친구와 가족들 사이에서 ‘세상 바쁜 척은 혼자 다 하는’ 정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지만, 급여는 내가 바빠지는 만큼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날마다 추가 근무를 하면서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한 과거의 나를 불쑥불쑥 마주했다. 더 이상 그 누구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청첩장을 받으면 입금부터 했다. 삶이 고된 건 모두가 비슷할 텐데, 너희는 결국 결혼을 해내는구나. 메시지엔 축하 대신 경이로움을 담아 보냈다. 수없이 많은 축의금을 계좌로 송금하는 동안 나는 세상에게 ‘비혼주의자’로 불리거나 ‘저출생의 원인’으로 지목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그 무렵 나에겐 결혼과 출산을 계획하는 것보다 내 삶을 보호하기 위한 해결과제들이 산적한 상황이었다.
학살이 돈이 되는 세계
요리와 글쓰기
공간에 머무는 기억
그래서 나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보며 국가가 환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육아휴직 급여 80% 인상, 출산휴가 확대, 초등학교 야간자율 학습 실행, 신생아 대출 소득 기준 완화…. 모든 대책에서 일관적으로 읽히는 것은 ‘일단 낳기만 하면 된다’는 메시지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든 메시지를 수신하고 그 맥락 안에서 자신들의 삶을 가동한다. 지금 정부는 ‘일단’ 태어난 아이가 어떤 노동환경에서 근무하든, 그 아이가 국방의 의무를 지다 어떤 사고를 당하든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을 아이를 낳으라는 말과 함께 한다. 구조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월세방과 사기위험이 도사리는 전셋집을 전전하는 청년들과, 모든 정책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존재’로만 제한된 여성들은 그래서 더더욱 그 대책을 납득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든 국가가 제대로 돌보지 않는 세상에서 ‘250만원만 주면 출산해주는 놈’ 같은 건 없다. 마트 행사처럼 출산정책에 혜택을 계속 보탠다 한들, 강해지는 것은 국가의 이 거대한 망상 속에서 내 삶을 스스로 구해야 한다는 생각일 뿐이다.
마침 6·25여서 그런지 이런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라떼는’ 이야기가 멋쩍지만 1970년대 여자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고무줄놀이를 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1950년 9·28 서울수복 직후 명동에서 마주친 작사가 유호와 작곡가 박시준이 서로 무사함을 확인하고 반가운 나머지 밤새 술을 마신 뒤 만든 노래라고 한다. 참혹한 전쟁 와중에서도 승기를 잡았다는 희망이 느껴지는 이 노래를 어렸을 때 우리는 고무줄놀이의 승자가 되겠다는 심정으로 불렀던 것 같다.
그런데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는 일은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일상에서도, 폐허를 딛고 세계에서 손꼽는 부자가 된 나라에서도 계속된다. 노래 가사가 떠오른 이유는 6·25 때문이라기보다 화성의 리튬전지 공장에서 일어난 참사 소식 때문이다. 몇년 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을 때 한 방송사는 ‘일하다가 죽지 않게’라는 인상적인 구호를 내걸었는데 여전히 일하다가 죽는, 전쟁 같은 노동이 반복되고 있다. 더구나 이번 사망자 대부분이 재중동포 여성 노동자였다는 사실은 재해가 어김없이 가장 소외된 취약계층을 덮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래전 뉴스가 이 일과 겹쳐진다. 2013년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노동자들이 일하는 8층짜리 건물 라나플라자가 무너져서 11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의류산업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그렇지만 같은 해, 방글라데시에 제조회사를 둔 미국의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역대 최고 이익을 기록했다.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의 죽음을 담보로 품질 좋고 값싼 공산품이 만들어진다는 건 이제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과 10여년 전 방글라데시가 그리 다르지 않다. 안전교육을 받지 않은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다가 쓴 이유는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우연이지만 사고가 터진 날, 한국소비자원발로 보도된 기사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알카라인 배터리의 가성비 비교 결과를 알려준다. 14개 제품 가운데 다이소가 중국에서 수입한 배터리가 가격 대비 지속시간이 가장 길다는 것이다. 가성비란 결국 생산단가를 낮추는 일이고 그 안에는 노동 착취도 들어있다. 우리가 싼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많이 소비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참사를 막는다는 것은 제값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안전한 건물과 설비를 구축하고 안전점검과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데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경제성장을 위해, 결국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위해 전쟁처럼 살아왔던 지난날을 벗어나자고 그토록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람의 목숨보다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용산참사의 비극, 세월호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가는 상황은 끝나지 않는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대로 적용하거나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생명을 지키는 일이 물건값을 제대로 치르고 소비를 줄이는 데 달려있다는 점을 사회 전체가 자각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직 충분히 소비하지 못하는 계층과 낙수효과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 나오겠지만 일상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전체 소비를 줄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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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전쯤, 페미니스트들은 왜 여성의 가사노동에는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지 질문함으로써 놀라운 발견으로 나아갔다. 사회에서 직업으로 인정받는 생산 노동의 아래에는 여성의 돌봄(재생산) 노동, 자연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자급 노동, 정치·경제적 식민지와의 불평등한 교환 그리고 자원 창고이자 폐기물 처리장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착취라는 지층이 켜켜이 들어있으며 이 모든 것이 산업 생산을 떠받친다. 지금 우리는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와 자연에 이르기까지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고 있다.
생명을 중히 여기지 않거나 지켜주지 못하는 곳에 생명이 깃들 리 없다. 사회적 참사가 쌓일수록, 그것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덮일수록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죽음의 문화가 지배한다. 젊은이들이 아이를 안 낳는 이유는 삶보다 죽음을 가깝게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지원금이나 육아휴직만으로 해결할 순 없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인구감소를 국가비상사태로 선포했지만 아무런 울림을 주지 않는 것은 인구와 사람을 분리하기 때문이다. 인구란 사람의 총합이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생산자, 납세자, 소비자, 피부양자를 가리킨다. 사람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사회는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지혜를 신뢰해야 합니다.
야스차 뭉크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26일 ‘분열의 시대, 다양성과 포용이 희망이다’를 주제로 열린 <2024 경향포럼> ‘위기의 민주주의, 진단과 처방’ 세션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책 <위험한 민주주의>(2018) 등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연구로 이름을 알린 학자이자 작가인 뭉크 교수는 포퓰리즘적인 정치인과 정당의 부상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문장으로 강연의 운을 뗐다.
뭉크 교수는 정치적 좌파, 우파, 중도를 막론한 포퓰리스트의 공통점으로 자신들만이 진정으로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며, 정치적 반대자들을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역적으로 낙인찍는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 등 세계의 정치인들이 각기 다른 국가, 종교, 정치 성향에도 ‘포퓰리즘’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이는 이유다.
뭉크 교수는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도 정치적 반대자를 두고 진정한 국민, 애국자가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서 이것이 포퓰리즘이 상대방을 적대화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뭉크 교수가 생각하는 포퓰리즘의 핵심적 문제는 정치적 차이를 인정하는 다원주의를 거부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대화되는 사회에서는 선거 제도가 갖춰져 있더라도 권력 이양, 정권 교체가 없는 사실상의 독재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뭉크 교수는 튀르키예, 아르헨티나, 러시아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했다.
뭉크 교수는 포퓰리즘의 영향이 때로는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는 주장도 내놨다. 국가·사회마다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뭉크 교수는 베네수엘라처럼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민주적 체제를 무너뜨리고 국민 삶의 수준을 떨어뜨린 국가들이 있다면서도 폴란드, 브라질, 미국 등 포퓰리스트들이 민주주의를 통제하려 했지만 아직까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국가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뭉크 교수는 폴란드는 집권 세력이 공영방송을 프로파간다로 활용하고 야당 등 반대 세력을 감옥에 투옥하는 등 민주주의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 역사가 있다면서 그런데도 2023년 총선에서는 야당이 승리하는 모습을 통해 손상된 민주주의가 복구되는 과정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국회의사당 점거 등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지만 끝내 권력을 이어가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뭉크 교수는 올해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것은 포퓰리즘의 위험을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영구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도 경고했다.
뭉크 교수는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는 명제에 그칠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기능을 저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퇴행·부패·혼란을 가져올 순 있지만, 이것이 과거의 완벽한 민주주의에서 미래의 완전한 독재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1과 0의 관점에서 보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결국 지난 수십년 간 우리 정치의 성격을 바꿔놓은 구조적 측면을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포퓰리즘이 득세하게 된 요인 네 가지를 짚었다.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 인종·성별 등을 둘러싼 문화적 갈등, 소셜미디어의 새로운 기술, 그리고 평범한 시민에 대한 신뢰의 부재다.
뭉크 교수는 특히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평균적인 사람, 평범한 시민들을 ‘나보다 못한’ 신뢰할 수 없는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이유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독일, 한국 등 여러 국가의 시민들과 대화하며 느낀 것은, 평균적인 시민들이 인간적인 본능으로 공정하고 선한 국가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