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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 원칙과 전략…윤 대통령, 한·중·일 정상회담 성적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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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작성일24-06-04 15:14 조회1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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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한·중·일 공동선언부터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까지. 외교·안보 현안으로 숨 가쁜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5월 26일부터 27일까지 약 4년 반 만에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담은 엇갈린 평가를 낳았다. 정상회담 재개가 역내 협력을 강화할 것이란 긍정 평가가 나오는 반면, 합의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반론도 있다. 특히 회담 결과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해석이 각기 다르다는 점은 혼란을 가중했다.
이처럼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윤석열 정부만의 잘못은 아니다.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한 이후 중국이 포함된 관계에선 이러한 상황이 반복됐다. 긍정평가는 경제협력, 부정평가는 정치적 합의에서 나오는 식이다. 동북아 국가 간 경제는 협력하지만 정치적 협력은 어려운 상황, 이른바 ‘동북아 패러독스(Northeast Asian Paradox)’의 굴레다. 그렇다면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느냐가 문제다. 정상회담이 유도하는 방향은 경제협력을 통한 정치협력의 달성이다. 학계에서 이 가능성을 다룬 지 이미 수십 년이 넘었다. 온갖 방안이 제시됐지만 실제 외교 현장에서 구체적 성과로 가시화된 적은 없다. 동북아에서는 정치 현안이 경제 문제에 우선한다는 것만 확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중·일 정상회담은 점차 각국 국내정치에서나 의미가 있는 회의로 변질하고 있다. 실상은 ‘만남을 위한 만남’에 그쳐도 ‘3국 협력 재가동’, ‘경제협력 확대’ 등으로 홍보하는 식이다. 한·중·일이 각각 자국 언론, 국민에게 설명하는 합의 내용, 표현부터 미묘한 차이가 발견된다. 하나의 회담, 하나의 공동선언에 각기 다른 해석이 세 가지나 나오는 ‘동상이몽’ 상황이다.
올해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담 역시 이러한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한국이 개최국이자 호스트(주인) 역할을 맡았지만 정상회담 성사 사실은 개최 일주일 전에야 발표됐다. 4년 반 만의 만남임에도 정상 간 논의 주제가 무엇인지조차 불투명했다. 그럼에도 한·중·일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정부는 ‘자화자찬’을 내놨다. 구조적 모순이 전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대체 무엇이, 어떻게 성과로 남았을까.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하였다,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다. 각기 다른 시기 나온 한·중·일 정상회담 공동선언문 내용이다. 첫 번째 문구는 지난 5월 27일 한·중·일 정상회의 직후 나온 공동선언문 속 내용이다. 두 번째 문구는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9년 12월 24일 제8차 한·중·일 정상회담(중국 청두 개최) 직후 나온 공동선언문, 세 번째 문구 역시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 5월 9일 제7차 한·중·일 정상회담(일본 도쿄 개최) 직후 나온 공동선언문 속 내용이다. ‘한반도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비핵화’ 관련 문구 중 어느 쪽이 더 의미가 명확한지는 분명하다.
지난 5월 27일,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한·중·일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정권 말 중국에 대해 ‘눈치 보기 외교 한다’, ‘굴종 외교다’라는 말들이 나왔다. 지난 정부의 대중 외교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국민의 요구에 따라 상호 존중의 한·중관계를 만드는 정책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포함하게 됐다는 논리다. 실제로 장 실장은 한반도 비핵화란 표현이 (공동선언문에) 들어간 것 자체가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 또는 목표로 설정했다는 것이라며 중국은 꽤 오랫동안 공식 석상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잘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어쨌든 저 표현을 쓰는 데 동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 실장 발언은 과거 한·중·일 공동선언과 비교하면 어떤 부분에서 발전했다는 것인지 의미를 알기 어렵다. 또 중국 측 입장과도 미묘하게 다르다. 지난 5월 28일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이번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비핵화 목표가 빠진 것이 중국의 반대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어떻게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는 외신은 한국 정부 설명과 달리 이번 한·중·일 공동선언 내용이 과거 공동선언에 비해 ‘톤 다운(수위 조절)’ 됐다고 본다는 것이다. 둘째는 중국이 말한 ‘한반도 비핵화’는 윤석열 정부 들어 긍정적으로 변한 것이 아닌 쌍궤병진(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 동시 추진) 원칙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 방향과는 다르다.
이국봉 시베이(서북)사범대 석좌교수는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문구로 ‘重申(총션)’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것은 ‘재천명’한다는 의미로 대화를 하기 위해 원래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정도라며 단어를 뭘 썼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은 한반도 핵 문제가 주한미군 등 남북 이외의 요소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북한만 비핵화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란 점이라고 말했다. 설사 정부 설명대로 ‘한반도 비핵화’ 문구가 ‘성과’라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중국은 무엇을 얻었는지와 비교해봐야 한다. 이는 윤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와 연결된다.
한·중·일 정상회담 일정은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3국 정상이 함께 만난 것은 5월 27일이었고, 그 전날엔 한·중, 한·일 양자회담이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26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날 진행한 양자회담을 두고 중국 외교부는 누리집에 윤 대통령이 한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고, 이런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 후 한국 정부의 입장은 하나의 중국 ‘존중’이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하나의 중국을 두고 ‘원칙’이란 표현은 쓰지 않는다. 한국의 ‘존중’이나 미국의 ‘정책’이란 표현은 ‘원칙’을 대신하는 말이다. 전임 정부까지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지속하기 바란다 정도의 표현을 덧붙였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공식 석상에서 ‘하나의 중국’에 대한 별도의 입장 표명이 없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지난해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힘에 의한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내정간섭’이라고 적극적으로 반발하는 내용이다. 이는 ‘중국과 대등한 외교를 한다’는 윤석열 정부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 사용됐다.
정부 논리대로면 중국 외교부가 밝힌 윤 대통령 발언은 심각한 사실 왜곡이자 외교적 결례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지난 5월 27일 우리 정부는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을 유지해왔으며, 이번 회담에서도 ‘그러한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고만 밝혔다. ‘그러한 취지의 발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했다는 중국 측 발표에 항의했는지, 또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는 평소 주장도 전달했는지 등도 밝히지 않았다. 이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하나의 중국’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와 비교해보면 분명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중국 국무원 누리집은 이번 중·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한 발언을 공개했다. 일본은 1972년 대만 문제에 관한 ‘일·중 공동성명’에서 결정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상대국 국내 정치에 이용될 수 있는 발언 자체를 피하면서,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항은 비껴갔다.
전문가들은 ‘하나의 중국’에 관한 입장 확인이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이었을 것이라는데 대부분 의견이 일치한다. 외교전문가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중국이 정상회담에 참여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의 중국에 관한 입장을 확인받는다는 것이라며 어차피 정부가 입장을 밝혀야 했다면 차라리 빠르게 밝히고, 북한 비핵화와 같은 사안을 공동선언에 넣는 방식으로 외교전략을 짰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이 부분에 관해 정리가 안 되다 보니, 정상회담 개최 발표도 늦고 우리 의제를 협상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지도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즉 윤석열 정부는 ‘하나의 중국’, ‘대만해협’ 문제와 관련해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지만 정작 협상장에서는 지난 정부와 입장차가 없었을 것이란 의미다. 이처럼 흔들린 원칙, 전략은 필연적으로 결과도 모호하게 만든다.
본래 한·중·일 정상회담의 주요 목적은 안보보다 경제문제에 맞춰져 있다. 실제로 공동선언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역시 공급망, 인적교류,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내용이다. 이중 공급망 문제에 관한 합의는 중국의 ‘요소수 수출 제한’, 일본의 ‘반도체 핵심 부품 수출 규제’처럼 언제든 파기될 수 있는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 인적교류 역시 유사하다. 박정진 일본 쓰다주쿠대 교수는 ‘대학 간 교류’는 고급 지식에 관한 협력 문제가 될 수 있어 미국의 견제 우려가 있다며 일본 내에서 해당 합의는 중국 전략에 말려든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한·중·일 FTA 역시 미국 중심의 시장 재편, 한·미·일 FTA도 가시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정도로 구체성을 가질지 의문부호가 붙는다.
이를 제외하면 남는 것은 한·일 양자회담에서 나온 ‘라인 사태’ 언급 정도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와의 회담 이후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지분을 매각하라는 요구는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며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윤 대통령 기대와 달리 일본 총무성 행정지도에 이어 지난 5월 29일 일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라인야후 측에 개선책 조기 실시를 압박한 사실이 알려졌다. 김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라인 사태가 한·일 간 외교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 일본 정부에 면죄부를 준 것밖에 더 되느냐고 지적했다.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동북아 패러독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만남을 위한 만남’일 뿐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전략을 잘 세우면 결과는 다를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박 교수는 한·중·일 정상회담은 중국이 원하지 않으면 개최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이 전제하에서 어떤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면밀한 전략검토가 필요하다며 안전보장 문제와 관련한 논의를 할 것이면 처음부터 한국이 비핵화 문제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게 새 로드맵을 제시하든가, 이게 어렵다면 과감하게 경제 문제에 집중해서 협의를 끌고 나갔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미·일에 편향된 외교에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도 놓친 셈이라며 정부가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