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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통일을 기다리며…최북단 섬에선 ‘한국어 융합 실험’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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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작성일24-06-25 04:31 조회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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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통해서만 육지로 연결돼빨리→‘톰발리’ 황해도 말 남아고립 공간서 다양한 말 섞이는대규모 언어 통합의 장이기도
물질 왔다 정착한 제주 해녀처럼수많은 곳의 다양한 말이 모여어느 하나를 없애는 ‘통일’ 대신저마다의 말로 소통하고 섞인다
한국어는 이 땅의 모든 말을 아우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땅’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나이가 좀 든 이들은 ‘백두에서 한라까지’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팔도강산’은 한반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새 천년의 멋진 젊은이들인 방탄소년단은 2013년의 그들 노래 ‘팔도강산’에서 마라도에서 문산까지라고 노래한다. 분단 5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 땅’은 휴전선에 의해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한국어도 반 토막이 난 것인가? 휴전선 북쪽의 땅에서 쓰이는 말은 한국어가 아닌가? 남과 북의 언어 이질화에 대해 수없이 많이 떠들지만 정작 정상회담은 통역 없이 이루어졌는데 남과 북은 서로 다른 말을 쓰고 있는가?
문산보다 더 북쪽, 황해도 땅이 눈으로도 빤히 보이는 곳에 섬이 있다. 인천에서 쾌속선을 타고도 네 시간이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는 섬이지만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한 섬이다. 빨리 와서 내 말 들어가 아닌 톰발리 오나서 내 말 듣어라고 말하는 이들, ‘장모님’이 담가주신 ‘김치’와 ‘짠지’가 아닌 ‘가시옴마이’가 담가주신 ‘짠지’와 ‘짠짠지’를 먹는 이들이 사는 섬이다. 의심할 바 없는 황해도 땅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남쪽의 차지가 되어 황해도와의 인연이 끊어진 후 남녘 각지의 사람들이 몰려있는 섬이다. 이 섬에서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해야 할 통일, 그리고 이후 구현해야 할 한국어 융합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톰발리 오나서 내 말 듣어
황해도 말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것이 별로 없다. 황해도는 휴전선 북부에 있지만 방언 분류를 할 때는 서울말과 같은 부류인 중부방언으로 분류된다. 서울이나 경기도의 말은 표준말과 비슷해서 방언 취급을 못 받지만 그래도 표준어의 모태가 되었으니 관심의 대상이 되기는 한다. 반면 더 북쪽의 평안도나 함경도 말이 워낙 강력한 힘을 발휘하다 보니 황해도 말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분단 이전의 문학작품, 분단 이후 북한 지역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황해도 말을 하는 화자가 설정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방언 연구자들 또한 황해도 말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황해도 말 연구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단 이후에도 황해도 말을 분명히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보통 서해5도로 묶이는 섬 중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가 그곳이다. 그리고 강화도에 딸린 섬이라고 여겨지는 교동도 또한 황해도 말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며 심지어 강화도 말을 언급할 때마다 소환되는 ‘햇시꺄?’는 황해도 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이 섬의 노년층, 특히 토박이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는 자리에 가면 황해도 말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다.
너 왜 왓어? 머 할 말 잇어? 내가 듣어 보고 해결해 주갓어. 잘못 쓴 것이 아니다. 백령도를 비롯한 황해도 말에는 받침에 ‘ㅆ’이 없다. 그러니 과거와 미래를 나타낼 때는 각각 ‘앗/엇’과 ‘갓’을 쓰고 심지어 ‘있다’도 ‘잇다’이다. ‘오다’는 ‘와/와서/와라’가 아닌 ‘오나/오나서/오나라’와 같이 쓰인다. ‘듣다’는 다른 지역에서는 ‘들어/들으니’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듣어/듣으니’이다. 이러한 독특한 말은 평안도 방언의 특징인데 이것이 황해도 해안을 거쳐 교동도에까지 나타난다.
백령도 말을 비롯한 황해도 말에서 ‘빨리’는 ‘톰발리’나 ‘통발리’로 나타난다. 어휘 전체를 살펴보면 차이가 그리 크지 않지만 친족 명칭에서는 차이가 커서 ‘가시아바이’와 ‘가시옴마이’에서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가시’는 아내를 말하고 이것이 부모를 가리키는 ‘아바이’ ‘옴마이’와 결합한다. ‘아내의’라고 구별을 하기는 하지만 아내의 부모도 아버지와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 정겹다. ‘김치’를 ‘짠지’라고 하니 김칫소를 넣은 메밀전병은 ‘짠지떡’이다. 김치에 이름을 빼앗긴 진짜 짠지는 ‘짠짠지’라 하니 이 지역의 말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황해도 말이 독특하다거나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섬, 고립과 도약의 공간
언어를 논할 때 ‘섬’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언어 섬’이 그것인데 특정 언어가 성격이 다른 언어에 둘러싸여 있는 곳을 가리킨다. 이탈리아어와 비슷한 말을 쓰는 루마니아의 바다에 계통이 전혀 다른 헝가리어가 섬처럼 고립된 채 쓰이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 땅에서 굳이 사례를 찾자면 온통 경상도 말이 쓰이는 울산이나 포항 지역에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돼 외지인들이 대거 유입된 결과 이들이 밀집해 사는 거주지에서는 경상도 말과는 다른 말이 쓰이는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섬은 인접한 육지와 유사한 말을 쓰기 때문에 섬의 언어가 언어의 섬을 이루는 사례는 드물다. 백령도의 말 또한 인접한 육지의 황해도 말이다.
그런데 바다로 고립된 섬은 종종 언어 도약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섬과 육지, 섬과 섬 사이의 바다는 걸어서는 갈 수 없는 큰 장애물이지만 배를 이용할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 사이에는 베링해라는 큰 바다가 있지만 그 사이에 있는 알류샨열도를 징검다리 삼아 인류가 이동한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도 섬을 징검다리 삼아 도약하기도 한다. 따라서 평안도 말의 특징이 서해안의 백령도, 연평도, 교동도를 거치며 남쪽으로 전해진다. 그 결과 뱃길을 타고 평안도 말의 특징인 ‘하갓어’가 인천까지 도약해 ‘하갔어’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에서 배를 타고 대거 남하한 이들이 충청도가 빤히 보이는 덕적도에 자리 잡은 후 덕적도에 황해도 말의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더 극적인 것은 평안도 말의 특징이 황해도의 섬을 거쳐 멀리 충남의 태안반도나 이와 가까운 경기도의 섬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백령도 말에서 들리는 ‘톰발리 오나’는 바닷길을 타고 한참 내려가 태안에서는 ‘빨리 오너’로 나타난다. ‘오나’는 육지로는 황해도에서, 바다로는 황해도와 인접한 교동도까지만 나타나는데 경기도를 건너뛰어 멀리 충청도에서도 들리는 것이다.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에서 ‘허수아비’의 뜻으로 쓰이는 ‘쩡애’가 경기도에 속해 있지만 충청도가 바라다보이는 덕적도에서 발견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인접한 육지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이런 말들은 뱃길을 타고 섬을 거쳐 도약해나간 말들이다.
J & B, 백령도에서의 언어 융합
오늘날의 백령도는 언어 면에서는 고립된 공간이다. 본래 황해도 말이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와의 교류가 완전히 끊겼기 때문이다. 현재의 백령도는 오로지 인천을 통해서만 육지와 연결될 수 있다. 그 결과 백령도 말은 인천에서 배를 타고 온 다른 지역의 말, 그리고 전파를 타고 들어온 표준어에 둘러싸인 형국이다. 이는 결국 본래 백령도의 말이었던 황해도 말이 고립되는 것을 의미하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황해도 말의 흔적이 사라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백령도 토박이일지라도 황해도 말을 잘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쓰지 않는 상황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런데 백령도 지역에서는 분단 이후 대규모의 언어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현재 백령도 주민의 반은 본래 거주하던 이들이고 나머지 반은 외지인들이다. 백령도가 군사 요충지이니 수많은 군인과 그 가족이 거주하고 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들어와 다양한 일을 하며 삶의 터전을 이곳으로 잡은 이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본래 쓰던 말을 백령도에 그대로 옮겨 놓는다. 학교에서는 표준어를 가르치고 방송에서도 표준어가 주로 나온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 본래 쓰이던 황해도 말과 다른 지역의 말이 서로 섞이며 백령도 말의 새로운 정체성을 이루어가고 있다.
섬사람들의 눈은 대부분 뭍으로 향해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섬을 떠나 육지에 자리를 잡고 섬은 마음의 고향으로만 남겨두고 싶어 한다. 백령도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젊은이들은 백령도를 떠나고 싶어 하고 자신들의 말에서도 황해도 말의 흔적을 지우고자 한다. 이렇게 섬의 본래 주인이 떠난 자리에 외지인들이 들어오고 이 지역에서 지워진 황해도 말의 자리에 다른 지역의 말과 표준어가 들어온다. 그러나 여전히 이 섬을 사랑하며 황해도 말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이들도 있다. 한국전쟁 이후 백령도는 고립된 공간에서 본래의 말과 다양한 말이 융합되고 있다.
백령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언어의 융합은 통일 이후의 언어를 예견할 수 있는 중요한 실험이기도 하다. ‘이 땅’의 범위가 다시 ‘백두에서 한라’가 되면 이 땅의 말에 대한 고민이 새로 시작된다. 둘로 갈린 이 땅이 하나가 되는 것은 정치나 외교 면에서는 ‘통일’이라 하지만 언어는 결코 ‘통일’이 될 수도 없고, 인위적으로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언어의 통일’은 하나로 만드는 것, 그러나 이 과정이 어느 하나를 없애는 것이 된다면 언어에는 맞지 않는 방법이다. 그래서 언어는 ‘통일’이 아닌 ‘통합’이 되어야 한다. 언어 사이에 있던 외적 울타리가 사라져 자연스럽게 하나로 융합되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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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실험이 이미 백령도에서 행해지고 있다. 언어는 살아 있는 생명체여서 통합과 융합을 거쳐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말의 시대를 열어간다. 사용자 수가 많은 말, 문화나 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집단의 말이 먼저 힘을 발휘한다. 이런 말이 크림, 버터, 초콜릿처럼 케이크의 겉을 감쌀지라도 그 안에는 여전히 바탕이 되는 빵과 여러 종류의 소가 케이크의 맛을 낸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통합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융합되면 이 땅에서는 모든 말이 제각기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유지하며 ‘이 땅의 모든 말’인 ‘한국어’를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다.
J와 B가 이름에 들어간 백령도의 호텔에 묵었다. 이름의 내력을 살펴보니 제주 출신의 해녀가 백령도로 원정 물질을 하러 왔다가 백령도에 눌러앉은 후 그 가족들이 만든 호텔이다. 그래서 인스타 좋아요 구매 그 이름도 제주(J)와 백령(B)이 융합된 것이다. 제주도 사람이 백령도에 들어와 백령도 사람이 되고, 제주도의 낯선 말이 백령도에서 소통되고 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수없이 많은 지역의 사람들이 그 수만큼의 말을 가지고 백령도에 들어와 저마다의 말로 소통을 한다. 이러한 융합은 언젠가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 땅의 모든 곳에서도 이루어질 융합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