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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좋아요 구매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한글 지킨 선비처럼 올차게 자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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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작성일24-10-09 04:03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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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좋아요 구매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가람 이병기(李秉岐·1891~1968) 선생의 생가가 있다. 선생이 태어나고, 고단했던 삶을 마친 곳이다.선생은 어린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는 내내 이 집을 떠나서 살았다. 오로지 한글을 지키고, 우리 전통 문학장르인 시조를 되살리기 위해서 분주했던 탓에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선생에게 고향집은 오래도록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이 집에 돌아온 것은 1957년 창졸간에 맞이한 뇌출혈로 활동이 어려워진 뒤였다.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찾아온 고향집에서 그는 사랑채에 머물렀다. 사랑채 앞, ‘승운정(勝雲亭)’이라고 이름 붙인 모정(茅亭)은 선생이 하늘을 바라보며 해바라기하던 자리다.승운정 앞에는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독특한 모양으로 살아남은 탱자나무다. 2001년에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된 이 탱자나무는 선생의 조부가 집을 지은 기념으로 심은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