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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포용과 지원’이 만든 결실···“이주민에서 ‘세계 시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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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작성일24-06-10 19:20 조회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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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얀 알셰블(Ryyan Alshebl·30)은 독일 남서부 작은 마을 오스텔스하임의 시장이다. 2023년 4월 시장에 선출돼 1년 넘게 시정을 책임지고 있다. 알셰블 시장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는 시리아였다. 내전을 피해 2015년 독일로 이주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시절 독일이 받아들인 난민 100만여명 중 한 명이다. 이방인으로 독일에 온 지 8년 만에 시장이 됐다.
오스텔스하임은 인구 2500명 대부분이 백인인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시골 마을이다. 알셰블 시장의 당선은 ‘동화 같은 일’ ‘포용을 보여준 모범 사례’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독일 연방통계청 자료를 보면 이민자 출신은 독일 인구의 약 24%를 차지한다. 반면 시장이 이민자 출신인 사례는 1%대에 그친다. 독일은 메르켈 전 총리 때 대대적 난민 포용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후 반이민을 핵심 기치로 내건 극우 세력이 부상해 현재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장 임기 8년 중 이제 1년을 지났을 뿐이지만 알셰블 시장은 오스텔스하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잡았다. 시청 사무실 열쇠를 관리하는 일부터 각종 회의, 현장 감사 등을 도맡았다. 마을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풍력발전기 사업은 직접 추진 중이다. 정책 의사결정을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4월30일 독일 오스텔스하임을 방문해 리얀 알셰블 시장을 직접 만났다.
알셰블 시장은 스스로를 ‘세계 시민’이라고 정의했다. 배경과 소속감 등이 다양한 난민 출신으로서 다른 국가에서 책임있는 시민으로 정착했다. 개별 국가의 구성원에서 더 나아가 지구촌 전체 체계를 살아가는 시민으로 발돋움했다는 뜻이다. 그는 이런 특성을 고려해 단순한 행정 업무뿐 아니라 시민들을 중재하고 매개하는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자신의 사례를 두고 독일이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라고 알셰블 시장은 강조했다. 독일은 이민자를 포용하려고 실질적으로 노력하는 사회인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난민 정책을 두고 ‘해야 하는가’라는 찬반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 해야 잘 하는가’를 논의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했다. 알셰블 시장은 내가 겪은 일(난민 출신이 시장으로 당선되는 일)이 일상적이라고 여기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다음은 리얀 알셰블 시장과의 일문일답.
- 2015년 난민으로 독일에 온 지 8년 만에 오스텔스하임 시장이 됐다. 시장 출마 전 독일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2015년 친구들과 독일에 올 당시에는 ‘환영문화’(Willkommenskultur·메르켈 전 총리 시절 독일 정부가 주도한 이민자 수용 정책. 독일 정부는 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서 내전과 빈곤을 피해 유럽에 정착하려는 난민이 몰려들자 2015년부터 한시적으로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120만명의 난민을 수용했다)가 있었다. 당시 독일 사회는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이민자를 도와야 하며 이민자가 (독일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확산돼 있었다. 집단 숙소를 떠나 처음 정착하게 된 지역 칼(Kahl)에 도착했을 때 정말 놀랐다. 많은 독일인이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우리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물었고 지역 단체나 동호회에 연결해주려 했다. 언어 교육뿐만 아니라 병원 방문까지 도와주려는 독일 시민들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당시 모든 것이 자원봉사를 토대로 한 도움이어서 어떻게 보면 ‘호화로운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일지 혼자 해낼 수 있다고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는데, 당시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적응을 하기 위해 첫번째로 언어를 배워야 했다. 독일어를 훨씬 빠르게, 잘 하기 위해서는 즐겁게 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마음이 중요했다.
- 독일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시골 지역은 보수적인 환경이긴 하지만 (나를) 적대시하진 않았다. 오히려 큰 도시가 아닌 시골에 정착했기 때문에 통합 과정이 성공적이었다. 대부분 이민자들은 큰 도시에 가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좀 더 작고 보수적인 지역에 정착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본다.
- 난민으로서 처음 느낀 독일의 인상은 어땠나. 이제는 완벽히 독일 사회 일원이 됐다고 느끼나.
처음엔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리아와 전혀 다른 풍경, 도시의 모습, 커뮤니티 구조…. 인프라도 전혀 다르다. 처음 반년에서 1년은 정말 굉장했다. 아침마다 숙소에서 나가면 ‘오늘은 어떤 새로운 걸 발견할까’ 싶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모든 것이 익숙하고 때론 지루할 수 있지만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겐 모든 것이 새로운 탐험이었다. 그땐 정말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것이 아름답고 인상적이지만 처음 느꼈던 감탄은 사라졌다. 이제는 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와!’ 하지는 않는다. 사회 일부가 되는 것은 보수적인 문화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받거나 ‘순수한 독일인’이란 점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독일인으로 인식하고 독일 사회 일부로서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배경과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독일인인지 시리아인인지 흑백처럼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없다.
- 독일 시민권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받았던 가장 큰 도움은.
국적을 얻기 위한 요건 중 하나는 언어 능력이다. 나는 언어를 꽤 빨리 배웠다. 독일 사회와 밀접하게 접촉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이민자들을 돕도록 정부가 준비한 덕분이다. ‘환영문화’가 강조된 2015~2016년 독일에 온 난민은 1960~1970년대 이주해온 이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에는 (이민자들이) 사회 일원이 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지 않았다. 현재는 이른바 난민 통합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난민이 한 시민으로 인정받도록 지원하려고 한다. 결국 독일 사회는 이민자를 물리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민자가 사회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또 정부는 이제 막 도착한 이민자들이 3년 후쯤 떠날 가능성을 전제로 하지 않고 이들이 장기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독일은 사회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문을 열어둔다.
- 독일 시스템 또는 시민이 민주적이라고 체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내가 이룬 성취(오스텔스하임 시장 당선) 자체가 독일이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다. 물론 국가가 요구하는 일정 조건들이 있지만, 8년 전 시리아에서 와서 독일어를 전혀 몰랐던 사람도 충분히 한 시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시장으로 선택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 스스로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리아에서 태어나 20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지만 난민으로 독일에 왔다. 초반 2~3년은 시리아에서 도망쳐와 독일에서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인 동시에 독일에 사는 시리아인이었다. 그러나 독일에 온 지 9년이 된 지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훨씬 복잡해졌다. (시장으로서) 시민을 대표하는 책임을 지는 동시에 여전히 난민이었던 과거와 시리아인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어서다. 개인적으로 찾은 정체성에 대한 답은 ‘세계 시민’이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우연히 정착한 사람’이라 표현하는 것은 오스텔스하임 시장으로서 적절한 답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시민들은 시장이 마을에 어느 정도 소속감을 갖고 있기를 기대하는 데다, 실제로 나는 그런 소속감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여러 가지 소속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나는 단순한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나아가 필요하다면 더 높은 수준의 역할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 언제부터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나. 시장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시장에 도전하게 된 건 의지와 우연이 합쳐진 결과다. 시장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2017년 오스텔스하임 인근 소도시 알텡슈테트 시청에서 행정직으로 교육받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당시 훗날 다른 교육을 받거나, 시청에서 행정 담당자로 남아 공무원이 되거나, 큰 포부를 갖고 시장에 도전하거나 등 3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명확했던 건 시장이 돼야겠다는 것이었다. 시장이 되려면 시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매력적 선택지가 되어야 하는데, 언어를 배우고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와 시민의 요구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정책을) 계획하고 구상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 오스텔스하임은 보수적으로 투표하는 지역으로 알려져있다. 시장에 당선되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과 극복한 방법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것은 ‘이민자에 대한 적대적 태도’와는 다르다. 오스텔스하임에는 이민자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다수가 아닌 소수다. 보수적인 이들을 설득하는 법은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사회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언어와 환경을 익혀 한 사회에 적응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자 하며 책임질 의향이 있음을 내보이는 것을 뜻한다. 선거 과정에서 힘들었던 것은 보수적인 사람들을 대하는 것보다 선거 캠페인에서 사람을 모으고 조직하는 일이었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결국 일반적인 시장 선거와 비교해 특별한 점은 없었다.
- 선거 유세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유세 과정에서 혐오를 표출하는 극우 유권자를 마주했을 때도 있었을텐데.
유세 과정에서 두 번 정도 그런 일을 겪었다. 집집마다 방문하며 선거운동을 벌이던 때 하루는 ‘당신은 시리아로 가서 시장이 되라. 여기에선 당신이 필요 없다’란 말을 들었다. 극단적 거부 표현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결국 그날 하루는 망치고 말았지만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세를 하는 데는 장단점이 있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만약 토종 독일인이었다면 이런 반응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시장으로서 하루는 어떻게 보내나. 일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시장에겐 일상적 업무가 없다는 게 멋진 점이다. 하루의 시작은 일정에 따라 다르다. 사무실에서 회의를 할 수도 있고 현장 감사를 나갈 수도 있다. (큰 도시의) 다른 시장처럼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작은 마을 시장은 행정 업무, 서류 작업 같은 일까지 처리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마을의 전략적 발전을 꾀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시장으로서 가장 큰 도전은 작은 마을인 오스텔스하임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시의회에서 세 차례 논의를 거쳐 발전기 세 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기업이 약 4000만 유로를 투자하고, 시는 부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 사업을 통해 약 75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오스텔스하임에는 1000가구가 있으니 약 7배에 달하는 전력 생산이 가능한 셈이다. 오스텔스하임 같이 작은 마을이 미래를 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 오스텔스하임 정책의 의사 결정은 소개해달라.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있나.
올해 가장 큰 사업인 풍력 발전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결정하면서 오스텔스하임의 장기 컨셉이나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15년 동안 오스텔스하임이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계획을 세우기 위해 ‘오스텔스하임 2040’ 프로젝트를 꾸렸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질문 70개로 구성된 시민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런 절차는 오스텔스하임에서 처음 이뤄진 것이다. 과거엔 시장과 의회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했지만 앞으로는 시민들은 참여시키고자 했다. 설문조사 응답률은 30~40%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50%에 달했다. 올 가을 완성 예정인 이번 프로젝트에는 주거, 인프라, 복지 등 다양한 측면이 포함돼있다. 나아가 시민들이 모이게 하는 마을주민 카페 같은 사회 프로그램도 중요한 부분이다.
- ‘난민 출신’이란 배경이 시장 업무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지.
나는 여전히 시리아 출신이고 난민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리적으로 먼 곳에서 왔거나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만의 역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장점은 차별과 같은 주제나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사회에 참여시킬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를 다룰 때 민감하게 접근할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 난민 신청이 늘면서 독일 극우파 정당 등은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이들은 난민을 수용하면 단점이 더 많다고 주장하는데.
난민 문제를 단순히 장단점으로 논하긴 어렵다고 본다. 장단점은 경제적으로 매우 세밀하게 조사해야 하지만 장점이 더 많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독일은 인구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고령화로 인해 후대에 충분한 인구가 확보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다만 난민 중에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모든 난민이 전문 기술이 있거나 즉시 일자리에 배치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면 10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 난민이나 이민자는 기존 생활양식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민자의 관습이 정착지의 규칙과 충돌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독일의 기준은 명확하다. 이민자이든 아니든 독일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민자들이 법을 어기면 그건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다. 이민자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에 적응할 것이란 기대는 이처럼 단순하고 현실적인 것이다. 물론 다른 문화나 배경에서 온 사람들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독일)는 폐쇄된 사회가 아니라 열린 사회다.
- 독일 사회는 난민 포용 정책을 잘 갖췄다고 보나.
8~9년 전에는 이민자 수용 문제가 매우 강조됐다. 당시 독일 전역에서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가 해보겠다. 여가 시간을 포기하고 이민자들을 돕겠다며 자원봉사에 나섰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통합 담당’이라는 상설 조직을 만들어 이민자를 돕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지금도 있긴 하지만 예전처럼 강력하진 않다. 봉사자들은 무보수로 일을 하다보니 어느 정도 피로감이 쌓인 것도 사실이다. 최근 독일 사회는 상승과 하락 시기를 겪으며 분열되기도 했다. 중도우파에서 극우파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다. 다만 자유주의자와 좌파는 우리가 이 문제를 더 잘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에서 난민 포용 정책의 문제는 ‘해야 하는가’를 넘어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 한국은 정책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라다. 한국에 조언을 한다면.
한국을 잘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알지 못하지만 한국도 인구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다고 들었다. 만약 한국도 국가로서 지속하기를 원한다면 어느 정도 이민에 의존해야 할 텐데, 이민 정책을 얼마나 현명하게 설계할지는 또 하나의 문제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지리적 위치에 따라 불법적으로 입국을 하기에는 어렵다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국가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이민자를 돕고 관리할지가 중요한 질문이 된다. 세계화로 인해 더는 폐쇄된 사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시리아 상황이 나아져서 평화가 정착된다면 다시 돌아갈 생각이 있는지. 고국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리아를 꼭 방문하긴 할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가족이 있는 곳이어서다. 그러나 시리아로 영원히 돌아가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다. 지금 막 독일에서 경력을 시작한 데다,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0부터 하나씩 쌓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이자 정치인이 고향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고향은 당신이 마을(Dorf)에서 바보(Doof)처럼 행동할 수 있는 곳이다. 당신이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유지하려 애쓰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낯선 사람이 된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고,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집에 있는 셈이다.’ 나는 이 답변에 공감한다.
- 한국에서도 당신의 시장 당선 소식은 널리 소개가 됐었다. 경향신문이 포럼을 열 예정인데 한국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나의 이야기를 환영하고 축하해준 것은 매우 영광이고 감동적이다. 다만 그런 상황이 내가 바라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보긴 어렵다. 내가 겪은 일이 일상적이라고 여기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