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 사건으로 시작된 반도체 노동자들의 집단 직업병 발병과 관련해 법원이 직접 작업현장을 살펴보겠다고 나선 것은 처음이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법원 결정을 반기면서도 현장검증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구회근)는 다음달 5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17라인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할 예정인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재판부가 현장검증을 하려는 것은 삼성전자 노동자 신정범씨, 삼성전자 협력업체 노동자 임한결씨의 백혈병이 업무상 재해인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다.
건식 식각 공정 설비 엔지니어였던 신씨는 2014년 7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17라인에서 웨이퍼 가공 공정 설비를 배치·조율하는 업무, 유지보수·사후정비 업무 등을 맡았다. 그는 퇴사 5년 뒤인 2021년 3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이듬해 11월 숨졌다. 임씨는 2015년 3월부터 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 기흥·화성사업장 등에서 가스감지기 관련 업무를 했다. 그는 2017년 9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이듬해 10월 사망했다. 두 사건은 신씨·임씨 모두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각각 32세, 28세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반도체 생산라인(팹·FAB) 하부공간(Sub-FAB)에도 빈번하게 출입하며 일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인스타 팔로워 구매 근로복지공단은 두 사건에서 모두 하부공간 작업환경을 조사하지 않았다. 신씨 사건에서는 역학조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고, 임씨 사건에서는 역학조사를 했지만 하부공간에 대한 조사 결과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부공간은 공기 순환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인 CSF, 화학물질 공급을 위한 밸브·전기 공급을 위한 케이블·화학물질 정화장치 등 기기가 설치된 FSF 등으로 이뤄져 있다. 유족 측은 하부공간의 유해·위험성 판단을 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두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은 갈렸다. 임씨 사건을 담당한 1심 법원은 지난해 5월 망인이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과 같은 수준으로 벤젠 등 유해물질에 노출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승인 판단을 했다.
하지만 신씨 사건을 담당한 1심 법원은 지난해 7월 근로복지공단과 달리 산재를 인정했다. 벤젠·포름알데히드·극저주파자기장 등에 노출된 것이 백혈병 원인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근로복지공단에 대해 작업환경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 노출 정도 등을 구체적으로 규명하려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망인의 작업환경이 2011년 이전의 작업환경보다 나아졌다는 것을 전제로 (산재 불승인) 처분을 했다고 짚었다.
두 사건의 항소심은 모두 서울고법 행정7부로 배당됐고, 재판부는 최근 현장검증 실시를 결정했다.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이 제대로 살피지 않았던 고인들의 작업환경을 뒤늦게나마 법원이 직접 살펴보겠다고 나선 것은 일견 반가운 일이라고 밝혔다.
다만 반올림은 고인들의 근무 시점과 검증 시점 사이에 7~10년의 차이가 있다는 점, 설비 유지보수·고장·정전 등 비상시적 상황에서 유해물질의 고농도 노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 발암물질·극저주파자기장 노출 등은 육안이나 냄새로 알 수 없다는 점 등에서 현장검증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올림은 법원은 현장검증 과정에서 여러 한계점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고인들의 업무환경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