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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화재사고’ 사망자 첫 산재 인정···공단 “신속 처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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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작성일24-07-05 03:21 조회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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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1차전지 공장 아리셀 화재 참사 사망자 23명 중 1명이 3일 첫 산재 승인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사망자 중 1명의 유가족이 지난 2일 오후 3시쯤 낸 유족급여 신청을 이날 오후 5시쯤 승인해 첫 월 유족연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공단은 사망자 유족급여 신청 승인은 신청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처리하게 돼 있는데, 이번 신청은 조속히 처리된 것이라고 했다.
공단은 부상자 8명 중 6명의 산재신청도 즉시 승인하고 치료와 휴업급여를 지원하고 있다. 공단은 ‘화성 화재사고 신속보상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상담부스와 1:1 현장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박종길 공단 이사장은 화성시 화재사고 희생자 및 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유감의 뜻을 전하며, 신속한 산재 처리 및 유족보상을 통해 아픔을 덜어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독일에 와서 신기했던 것 중에 하나는 나체가 그 자체로 성적인 함의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우나가 남녀공용으로 운영되고 수영장·탈의실 등은 성별로 공간이 나뉘어 있지 않아 모두 섞여 옷을 갈아입는다.
이것은 ‘자유로운 몸의 문화’를 뜻하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의 나체주의 운동 에프카카(FKK; Frei-korper-kultur)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세기 말 레벤스레폼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FKK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자연과 멀어진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벗은 몸으로 만나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자는 반권위주의 운동이었다. 아무래도 벌거벗은 몸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뽐내기는 어려울 테니까. 지금도 독일 전역에는 국가가 지정한 FKK 해변과 공원, 사우나 등이 많다.
몇주 전 나는 2박3일 동안 열린 나체 축제에 다녀왔다. 평소 다니던 요가원에서 우연히 이 행사를 알게 되었는데 순전히 호기심이 발동하여 혼자 가보기로 한 거였다. 축제는 베를린에서 약간 떨어진 아름다운 호숫가 근처에서 열렸다. 축제 이름이 ‘나체-차-축제’였던 만큼 우리는 2박3일 동안 자주 차를 마실 예정이고 사람들은 예쁜 찻잔에 자기 이름을 써서 맨몸에 목걸이처럼 매고 다녔다. 곳곳에서 각종 요가와 명상 워크숍, 댄스 파티가 열렸다.
행사를 시작하며 주최 측은 사람들에게 축제가 열리는 동안 공개된 곳에서, 그리고 숙소에서 성적인 행위를 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벗은 몸이 너무나 오랫동안 과잉성애화되었기 때문에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이 공간을 탈성애화(desexualized)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간단한 말이었지만 이 말이 내게 미친 파장은 컸다. 그 얘기를 듣자 나의 몸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초등학생의 몸일 때부터 타인에 의해 성적인 대상으로 여겨졌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나조차도 나의 나체를 중립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참가자의 절반은 남성이었고 나는 그곳의 유일한 아시아 여성이었다. 덩치 큰 남자들이 있는 곳에서 벗고 있으니 몸이 계속 떨렸다. 벗은 몸으로 남자들 사이에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낀 적이 아기 때를 빼놓고는 없었으니 몸이 끊임없이 경계 신호를 보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나는 내 마음을 정직하게 털어놓았고 그 덕분에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여러 생각과 감정을 통과하며 몸의 자유를 되찾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지속된 축제에서 나는 만 하루를 우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속에서 올라오는 분노와 슬픔을 지켜보면서. 나중에는 내가 우는 것이 나의 슬픔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번은 호숫가 옆 작은 정자에서 조용히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옆에는 스위스에서 온 부부가 앉아 있었다. 둘이 잘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와이프인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남자는 조용히 다독였다. 나는 벗은 몸과,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기억을 애도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녀의 슬픔은 나에게도 옮아서 나도 같이 울었다. 그러자 차를 따라주던 내 앞의 독일 여자도 같이 울었다.
토요일 오후쯤 되자 다 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축제를 즐길 시간이었다. 요가, 명상 등 신비롭고 이국적인 ‘동양’ 문화를 가져와 풍요롭게 살아가는 백인 유러피안을 미워하는 것도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었다. 지구상에 상처 없는 곳은 없고 내 몸에는 행복한 기억도 많으니까. 나는 호수로 뛰어들었다. 맨몸 구석구석을 감싸는 물의 느낌이 몹시 관능적이었다. 호수에서 충분히 수영하다가 올라와 따뜻한 햇살 아래에 누워 몸을 말렸다. 아침 숲속 들리는 새소리가 오케스트라 같았다. 너무나 편안하고, 너무나 자유로웠다.
▼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차량 돌진 사고로 숨진 희생자 9명은 서울 영등포병원, 서울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에 분산돼 안치됐다. 희생자 유족과 지인들은 2일 눈물을 흘리며 빈소를 지켰다. 희생자 9명 가운데 4명은 한 회사에서 근무한 직장 동료였고, 2명은 서울시 공무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행정국 청사운영1팀장 김인병씨(52)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안치됐다. 김씨의 빈소에선 울음이 흘러나왔고, 검은 상복 차림의 김씨 유족들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빈소를 드나들었다.
김씨 유족들은 경북 안동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이 전기불도 들지 않는 가난한 집에서 자라 자수성가한 인물이라 했다. 중학생 때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던 중 차 사고로 한쪽 눈을 잃고 한쪽 팔을 못 쓰는 장애를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얻었지만 공직에 몸담으며 성실한 삶을 살아왔다고 했다. 김씨의 큰형 김윤병씨(68)는 내일모레가 어머니 제사인데 내려올 수 있냐고 전화했더니 안 받더라며 형으로서 도와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셋째 형(57)은 스마트폰에 저장해둔 동생의 방송 인터뷰 영상을 내밀었다. 그는 형제가 모두 공직사회에 있었는데 특히 동생은 더 열심히 일했다며 자랑스러운 동생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9급 세무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5급 사무관으로 승진했다. 김씨는 탈세 추적이 주임무인 서울시 38세금징수과에서 근무하며 성과를 올려 TV에도 자주 출연했다. 김씨는 1년 전부터 청사운영팀에서 근무했는데 사고 당일 그가 속한 팀이 서울광장 야외도서관 조성 공로를 인정받아 ‘동행 매력 협업상’에 뽑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지인들은 공직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던 사람 어려움을 나누면 늘 친구들을 격려하고 좋은 얘기를 해주는 사람으로 그를 기억했다.
김씨와 함께 서울시청에서 근무했던 윤모씨(30)도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윤씨가 일했던 부서 팀장은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조문하고 조용하고 책임감이 강한, 앞길이 기대되는 직원이었다라며 밝게 생활하고 화합을 잘해 대인관계가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시청역 인근에 본사를 둔 은행 직원 4명이 한꺼번에 참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중 1명은 사고 날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의 승진과 인사발령을 기념해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인도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희생자 이모씨(54)의 노모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빈소에서 절규했다. 보행기를 끌고 아들의 장례식장을 찾은 노모는 가슴을 두드리며 ○○야, ○○야, 거기서 나와라. 거기 앉아있으면 어떡하니. 엄마 보게 좀 나와라. 내가 먼저 가야지, 엄마가 어떻게 살라고라고 통곡했다.
같은 은행에서 근무했던 이모씨(52)가 안치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병원 장례식장에서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유가족의 무거운 발걸음이 이어졌다. 은행 부지점장인 이씨는 두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이씨의 삼촌 내외는 너무 착하고 성실한 조카였고 같이 살았었다면서 말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직장 동료 B씨는 동선만 달랐지 함께 퇴근했다면서 어제 나는 먼저 가고 그 친구들은 담배를 태우러 가면서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착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믿어지지 않는다며 말끝을 흐렸다.